잡탕

사회복지사의 잡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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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거리/끌적끌적(긴글)

목적론, 동기론적으로 본 성경

진갱 2016. 2. 1. 16:25

 

 

  당신이 사는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보통 목적과 목표를 구분한다. 목적이란,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도달하고 싶은, 얻고 싶은 혹은, 이뤄야할 도달해야 할, 얻어야 할 무엇이라고 본다면, 목표는 목적의 각론으로, 그 목적을 해 나가기 위해 혹은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해야할 것이나 또는 얻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즉, 목표는 목적의 하위적인 특성을 보인다고 하겠다.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목적론, 동기론을 펴볼까 한다. 물론, 성경적인 언어로 말이다.

 

과거

  과거 나는 구원론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이유는 "내가 과연 구원받은 자인가?"가 매우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의 제 1관심은 나의 구원이었으며, 항상 그것을 고민하고 걱정하고 살았다. 그리고 그것을 최고로 추구하는 교회를 가장 좋은 교회로 여겼고, 실제로 그러한 교회에 다녔다. 구원론은 나의 삶의 전부라 표현해도 좋을 정도였고, 온갖 구원받는 이론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은 얻을 수 없었고, 끊임없이, 구원을 갈망하였다. 그렇다고 구원론이 나쁘다거나 자신의 구원을 추구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목적화"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그것은 가장 신랄하게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찰스피니의 책을 읽으며

  찰스피니는 법률가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회개한 후 목사가 되어서, 미국에서 제2차 대각성 운동을 일으키며 여러 신앙의 위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의 저서를 읽으며 "이기심"이란 설교를 읽게 되었다. 그는 설교에서 "이기심"이라는 설교가 자기 설교의 으뜸가는 주제를 다루는 설교라고 소개한다. 그의 그 설교를 기억 나는 대로 단순화 하면, "인간의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기심으로 가지는 목적은 죄가 된다."이다. 난 이 설교가 옳은지 여러 날을 고민했고 결국 이 말을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내렸다.

 

현대에 깊게 뿌리내린 "구원을 목적화 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

 

  아래글은 웨스터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일부와 성경 말씀이다.


문  1.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답.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고전10:31; 롬11:36; 시73:24-26; 요17:22-24)

 

(고전 10: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의 제 1목적은 무엇인가? 신실한 기독교인에게 묻는다. 돈? 명예? 자신의 신체?인가? 물론 필요한 것이지만, 누가 봐도 이런 식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도 아니요, 구원받은 자도 아님을 스스로도 알고, 모두가 그가 진실한 신앙인이 아님을 인정할 것이다.

  자신의 구원을 제 1목적으로 삼는 사람은 어떤가? 이 사람들은 누구보다 고상하며, 자신의 몸을쳐 복종케 하며, 누구보다 신실해보이며, 심지어 존경을 받는다. 바리새인의 제 1목적도 자신이 구원을 받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제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실제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목적삼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의 구원을 지나치게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보다 우선시 하여 자신을 우상화하는 자들이 아닌가?

  자신의 구원을 제 1목적으로 삼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가 개인주의화 이기주의화 되면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밖에 모르고 있다. 요즘 구원론이 나름 인기를 누리는 듯 하고 베스트 셀러도 심심치 않게 되는 듯 하다.

 

  (요 12:24-25)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난 구원론에 흠뻑취해 그것을 목적화 하고 있었을 때는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뭐야. 구원이 제1목적인데 왜 생명을 사랑하면 생명을 잃지? 오히려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어야 옳지." 그러나 성경은 틀리지 않다. 완전무오하다. 당신이 구원을 얻는 것을 제 1목적으로 즉,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여 산다고 해보자. 그럼 죽는다. 당신이 살기 위한 목적이면 무조건 죽는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다른 것이 목적이 되어야만 옳다는 증거다. 당신이 생명, 목숨, 구원을 사랑하면 즉, 하나님보다 먼저 사랑하면 죽는다. 그러면 살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한다. 그래도 죽는다. 왜냐하면 당신의 목적은 당신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마 10:39)자기 목숨을 얻는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이 말씀도 같은 것을 말해준다. 기독교는 무엇인가? 불신지옥을 믿으며 지옥을 면해보려는 기복신앙이 기독교인가? 그것이 초보적 아기들의 신앙에서는 통하련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정말 이러한 천국지옥에관한 교리가 근간이 되는가? 물론, 우리는 구원을 목표로 가져야 한다. 주님은 주님을 두려워하라고도 하셨고, 여러 곳에서 천국에 가기 위해 의롭게 살 것을, 종말을 맞이하여 거룩하게 살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자신의 구원만을 추구하고 그것을 제 1목적으로 삼고 하나님은 뒷전으로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과연 의롭게 보실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야 하고, 주기도문에서 나오듯이 그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을 우선시 해야한다. 어쩌면 그의 현존까지 구할 필요도 없다. 그의 현존은 스스로 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영광은 이 땅에서 더럽혀 질 수 있기에 그의 이름은 이 땅에서 흠이 잡힐 수 있기에 우리는 그의 영광과 이름을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이다. 그렇다면 죄를 마구 지으며 살라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자가 죄를 지으며 막 살 수는 없다. 그것이 동기화된 사람이 그런식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할 수 없다. 사람은 물론, 구원을 염두해 둘 때 더욱 거룩해 진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목적화 되면 율법주의화가 되기 쉽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구원론에 집착하는 자들은 결국, 자기 자신의 행위로 의를 얻으려는 데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기쁘심이 되는 것을 추구하며, 그리고 구원도 그러한 일환으로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찰스 피니뿐만 아니라 존 웨슬리도 이러한 사상을 개진한다. 그의 표준설교집 2권에서 이러한 사상을 옅볼 수 있었다. 그는 "순일"이란 표현을 쓰며, 목적이 오로지 하나님께만 가 있어야 함을 말하였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목적으로 가지는 것을 행위로 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믿음으로 그의 보혈을 의지할 때 모든 것을 깨닫고 모든 것이 가능해 진다. 이 이론이 진리라면 다음의 은혜가 임할 수 있다.

 

 1. 구원받았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자가 자유케 된다.

 2. 자기애라는 쳇바퀴에서 벗어나게 된다.

 3.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4. 건전한 구원관이 정립되고 주님을 사랑하게 된다.

 5. 주님을 진정한 왕으로 보시게 된다.